지난 주말 친구들과 시간 보내며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시내에서 열리는 마켓에 가고, 점심으로 맛있는 베트남 음식과 커피를 마시고, 집에 가서 보드게임하고, 저녁도 같이 요리해서 먹고, 늦게까지 대화하다 밤에 농장길을 걸으며 별을 세고. 친구들이 없었다면 집에서 게임이나 트위터만 했을텐데, 낮, 저녁, 밤 내내 함께 해도 편하고 지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 난 매일을 약속으로 채우고 맛집, 카페를 다니던 사람이었다. 특히 친구들, 동아리 사람들과 코인 노래방에 가는걸 좋아했는데, 독일에 오니 내 생활도 변했다. 독일은 식도락의 재미도 없고 우리나라처럼 노래방, 만화카페 같은게 발달되어있지 않다. 클럽, 바는 있다고 들었지만 대도시의 세련되고 경쟁하듯 새로운 자극을 주는 '럭스 나잇라이프'와 거리가 멀다. 사실 이런 종류의 재미를 좋아하는 사람은 서울이나 홍콩, UAE 같은 도시에서 살면 될듯. 홍콩 친구가 데려가준 휘황찬란한 인테리어의 바, 식당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독일에 와서 처음엔 적응이 되지 않았다. 놀 것도 없는 곳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알고보니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놀고 있더라! 그렇게 그들에게 이끌려 함께 놀다 보니 독일문화에 적응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럼 독일인들은 뭘 하고 노는가. 카페, 바를 탐방하며 노는 사람도 있지만 서울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노는 것 같다. 집에서 친구들과 요리하고, 하우스파티하고. 야외로 나가면 자연은 좋다. 공원이 크고 어딜 가도 있으니 반려견을 산책시키거나 여름에 일광욕, 바베큐를 하는 재미로 산다.
코로나 전 한창 하우스파티할 땐 금요일마다 마트에 들러 안주거리와 와인을 사서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들 집에 갔고, 거기서 같이 영화, 애니를 보거나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춤추며 즐겼다. 어떤 날은 프로젝터를 폰에 연결해 싱글인 친구의 틴더 화면을 띄우고 함께 왼쪽으로 스와이프할것이냐 오른쪽으로 할것이냐 결정한 적도 있다. 그중 아주 매력적인 사진이 뜨면 다들 흥분해서 Right! Right! 소리치던게 기억난다. 크리스마스에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친구들끼리 팟럭파티해서 김밥과 양념치킨을 가져간 적도 있다. 사실 친구를 사귀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영어가 편하고 학교에서 동기들 공부를 많이 도와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커뮤니티가 생겼다. 이 친구들이 파티에 초대할 때 빼지 않고 찾아가면 자연스레 그룹챕에 끼게 되고, 같이 놀면서 그룹에서 한 두명이랑 더 가까워져서 친구가 생겼다.
독일에서 친구들은 어디서 만나나 -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나고 자란 곳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사귄 친구들 그대로 평생 어울리는 것 같다. 그래서 독일에서 유학한다면 그나마 친구들이 생긴다. 난 유학한 도시에서 취직했는데, 외향성인 나는 주말이나 주중 저녁마다 불러낼 친구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독일인도 있고, 아닌 친구들도 있는데, 경험상 독일에 사는 외국인들이 더 사귀기 쉬웠던 것도 같다. 일단 영어만 하면 되고, 가족, 친구 없이 독일에 왔으니 날 만날 동기가 더 강한 것 같기도 하고. 또 독일인들이 가족을 만나는 크리스마스에 같이 어울릴 수 있다. 유럽인들은 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만 나처럼 먼 곳에서 온 학생들은 우리끼리 놀았다.
슬프게도 학교 졸업하고 많은 친구들이 독일 다른 지역으로 가서 멀어지게 되었는데, 그래도 서로 안부 묻고 내키면 놀러가고 싶다. 다행히 나랑 가장 친한 세명은 내가 사는 도시에 있다! 두 명은 학교에서, 한 명은 학교 밖에서 만났는데, 이 중 한명은 보드게임을 주로 하러 모이고, 다른 한 명은 온라인 게임 그리고 맛집 탐방을 자주 간다. 나머지 한 명은 개를 키우고 애인과 사는 집이 넓고 좋아서 자주 놀러간다. 개 산책도 시키고 요리도 하고. 이밖에도 파티 그룹이 있다. 쿨한 선배들이 방 네개짜리 아파트를 구해서 같이 사는데, 마치 미드 프렌즈나 하우 아이 멧 유어 마더같이 파티와 에프소드가 끊이지 않은데, 그중 매력적인 바람둥이 남자애가 파티 중 하룻밤에 8명을 감염시킨 코로나 집단 감염 사건 이후로 피하고 있다..
스타트업 인턴하면서도 친구들을 사겼다. 특히 스타트업의 인턴들은 대도시에 막 도착한 유럽 각지 20대 젊은이들이라 우리끼리 잘 뭉쳤다. 회사 욕도 하고 ㅋㅋ 안타깝게도 이 친구들 다 인턴 후 스위스, 프랑스 등 다른 국가로 이직해서 링크드인 친구로만 남아있다.
지금 직장은 다들 아버지 뻘의 유자녀 기혼남성들이라 사적으로 친해질 것 같지 않다. 이게 더 낫다고 생각하고 (스타트업에서도 인턴들끼리 드라마가 좀 있었다)
또 플랫메이트들과도 친한데, 세 명이 중국, 한국, 대만인이라 가끔 버블티와 중국/한국 음식을 먹으러 간다. 집에서도 주방에 있으면 대화하고. 그전 WG에 살 때는 Zweck-WG라 데면데면했는데, 이번엔 친해져서 우여곡절이 많다. 같이 살고 서로 부딪히다 보니 안 좋을 때도 있지만 반대로 외롭지 않아서 좋다.
글에서 썼듯이 결국 내 가장 친한 독일 친구들은 학교 다닐 때 만나서 유학으로 해외생활을 시작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유학 없이 해외취업한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 도통 친구를 사귀지 않는 독일인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친구를 만드는지 궁금하다. 녹록치 않을 것 같은데, 또 길은 찾으면 얼마든지 있고 인연이란 예측할 수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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